오마이뉴스
정미경(18.05.20), 일자리 창출, 수요를 찾아라- 소형조선수요와 선수금환급보증(RG),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35867
지난 6차 일자리위원회 회의에서 정부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소셜벤처에 최대 1억 원의 바우처를 지원한다고 결정했다. 최악 '고용쇼크'에 내놓은 정책으로 민간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면서 주력 산업의 경쟁력 회복을 검토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다.
현재 정부의 일자리정책은 최저임금제 1만원과 비정규직의 정규화 이상의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지지부진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일자리수요는 파생수요이다. 즉, 가격을 낮추면 수요가 높아지는 상품 및 서비스와 달리 먼저 고객이 상품과 서비스를 수요해야 노동력수요가 파생적으로 창출된다. 따라서 일자리정책을 추진하는 데 산업에 대한 전문성이 요구된다.
조선산업을 들여다보자. 현재 중대형 선종은 수주불황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소형선은 중대형 선박과 달리 큰 기복 없이 수요가 꾸준한 산업이다. 소형 선박시장은 현재 유조선을 중심으로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15,000 DWT 미만의 화학제품운반선, 유조선 중에서도 특히 5000 DWT와 3500 DWT급 탱커선 및 가스운반선의 수요가 한국의 조선소를 찾는다.
그리고 이러한 선박들은 선령이 20년 이상인 선박들이 대부분이어서 대규모 대체수요가 예상되는 시장이다. 이 시장에서 한국의 조선소가 기술력 있고 신뢰할 만한 공급자로 자리를 지키는 것은 중소조선산업을 지키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중요하다. 조선산업은 자동차나 전자에 비해 고용계수가 높은 일자리 효자산업이다. 특히 중소형조선은 대형에 비해 일자리 창출효과가 높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소형 수출선을 건조하는 조선소들은 배를 만들어 달라고 찾아온 외국의 선주를 되돌려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쉽지 않은 시황 속에 중국이나 일본과 치열한 경쟁을 뚫고 수주계약을 체결한 조선소가 은행에서 RG를 발급받지 못해서 건조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RG는 조선소가 선박건조계약을 체결하면서 선주에게 조선소가 파산할 시 선주가 선박건조를 위해 지불한 선수금을 되돌려 주겠다는 은행의 보증서이다. 수주계약을 체결하고 두 달이 지나도록 선주에게 건조계약의 할 수 있는지 성사여부도 알려줄 수가 없다. 한국의 조선소는 이렇게 전 세계 선사로부터 기피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비단 외국선사만이 아니라 국내 선사들조차 탈 한국 조선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한국의 소형 조선사들은 세계조선해양시장의 호·불황 여부와 상관없이 경쟁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고 소형조선분야의 일자리는 아주 포기하게 될 것이다. 피와 땀으로 일군 세계 제1위 대한민국의 조선산업은 내적으로는 일자리 유지가 힘든 피로감, 그리고 외적으로는 신뢰와 경쟁력 상실이라는 이중고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이렇게 한국의 중소조선사들이 세계시장에서 불신의 벽을 쌓아 올리는 동안 시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일본과 중국의 조선사들이다.
그간 정부의 조선 산업 정책은 대형조선사에게는 '대마불사'로 상대적으로 관대한 지원을 해주어 왔다. 반면 중소형 조선에게는 칼날 같이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대형 및 중견 조선사는 RG 발급이 쉽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주채권은행 등을 중심으로 RG 발급이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주로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RG를 발급 받는 중소형 조선소의 경우 전체 조선시장의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은행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고 2017년 발표된 정부의 RG 발급 원활화 방안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
현재 정부의 소형조선 지원정책은 정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이나 기업은행에서 선가의 80%를 RG발급 받도록 하고 신용보증기금에서 RG의 75%를 보증하여 주는 정책이다. 소형조선소가 주로 수주하는 100억대 수출선을 기준으로 정부의 보증한도를 각종 평가기준에 따라 감액하고 나면 가능한 보증액은 최대 40억 미만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정부의 'RG 발급 원활화 방안'은 소형조선소에게 그림의 떡이 되어 버린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경우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소기업을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동력으로 여겨 정책적인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유럽의 소기업법(Small Business Act)은 유럽의 각국이 '소기업 우선원칙'에 따라 법규를 재설계하도록 하고 중소기업의 필요에 부응하는 공공행정을 펼치도록 한다.
중소기업의 요구에 공공정책수단을 맞추고 정부조달사업에 중소기업의 참여를 촉진하여 국가보조금의 중소기업혜택을 높인다. 상업적 거래에서 적기에 대금지불이 가능하도록 중소기업의 금융에 대한 접근성을 촉진하고 중소기업을 위한 법률 및 비즈니스 환경을 개발한다. 중소기업의 기술업그레이드와 모든 형태의 혁신을 촉진하고 중소기업이 유럽시장에서 제공하는 기회를 통해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다.
독일에서는 자본시장에서 대규모 자본을 동원하는 것이 어려운 중소기업이 은행에서 원활한 대출을 받아 자본을 조달하고 투자와 혁신할 수 있도록 다양한 대출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 각종 공적지원의 의존성이 높은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비교하여 더 많이 관료주의문제에 부딪히게 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관료주의 경감법'을 도입하고 있다.
독일의 조선업은 7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중반까지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독일의 조선업이 완전히 침체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독일의 조선해양산업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다시 급성장을 하였다. 현재 독일은 조선 및 관련 기자재업종 500개 기업에 약 9만 명이 고용되어 있다. 조선 및 해양기술 분야를 포괄하면 약 20만의 인력을 직접 고용하고 있다. 간접 인력을 포함 40만 명을 고용하고 있다. 전체 조선해양산업 부가가치의 70-80%가 중소조선사 및 기자재업체에서 창출된다.
무엇이 완전한 침체를 예견케 했던 독일의 조선업을 중소기업 유망산업으로 바꾸어 놓았을까? 성장, 혁신, 일자리창출이 기여도가 높은 중소기업이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을 지원한 결과이다. 대형조선과 달리 신용리스크가 더 큰 중소조선소를 차별하는 우리의 기업환경과 큰 차이가 난다.
소형조선의 RG발급을 제대로 원활히 하기 위해 정부가 기존의 정책에 RG의 75% 보증한도를 확장하고, 기업의 신용범위를 확대, 선박인도전 금융지원책으로 계약적용 선가 30% 건조금융을 지원해야 한다. 그러면 소형조선과 그 일자리는 바로 살아날 수 있다. 산업수요가 일자리를 만든다.
덧붙이는 글 | 정미경(독일정치경제연구소 소장, 단국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