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2020-03-02) [기고│아우스빌둥과 중소기업] 중소기업도 우수한 인재 고용해야 공정한 경 쟁 가능, 내일신문, http://www.naeil.com/news_view/?id_art=342264
"국가는 더 유능한 기업가인가?" 사회적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독일은 "아니다"라고 답한다. 독일에선 국가가 산업의 발전에 목적의식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시장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런데도 독일의 산업정책에서 국가의 역할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산업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국가가 경쟁질서를 잡는 정책을 펼쳐야하기 때문이다. 공정한 경쟁이 가능해야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고 경제전반이 혁신성을 유지하고 지속적인 발전도 가능하다.
국가, 공정 경쟁질서정책 펼쳐야
독일의 대표적인 산업정책 중 하나가 중소기업정책이다.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는 대기업과 비교해 불리한 시장조건에서 경쟁해야 하는 중소기업에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위해 다양한 산업정책을 펼치고 있다. 중소기업의 자본조달을 돕고, 중소기업을 위해 관료주의를 경감하고 연구개발과 디지털화를 지원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아우스빌둥을 도입한다고 한다. 필요한 기술과 일하는 사람의 능력이 잘 들어맞기 위해서 아우스빌둥을 기업이 주도해야 한다. 그런데 아우스빌둥을 기업이 주도해서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중소기업 중소기업대로 알아서 하게 놔두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 문제는 어떻게 하나? 양극화가 아우스빌둥을 통해 더 고착화하지 않을까? 독일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소했을까.
독일은 무엇보다 중소기업이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불리한 처지에 처하지 않도록 우수한 전문기술인력을 제공하는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우수한 인재를 고용하려는 경쟁은 세계적 대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도 일어난다. 독일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중·소기업 모두에게 충분한 인력이 공급되도록 고급인재를 양성한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이 아우스빌둥이다. 또 연방 산업부, 교육부, 재계, 노동계가 협력으로 아우스빌둥과 재직자 훈련을 강화하기 위해 '직업훈련동맹'을 구축하고 중소기업의 인력공급에 발 벗고 나선다. 한국정부도 우수한 학습근로자가 중소기업에 가도록 중소기업의 아우스빌둥에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중소기업은 정부의 아우스빌둥 지원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 같다. 우수한 학습근로자가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의 아우스빌둥을 선택하도록 만들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이 우수한 학습노동자에게 매력적인 기업이어야 한다. 2018년 중소기업 상용근로자 임금은 독일이 대기업의 약 85~90%인 것과 비교해 우리나라는 65% 수준이다. 심각하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의 격차다. 2016년 중소제조업의 노동생산성은 대기업 대비 32%에 불과하다. 독일의 경우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생산성이 약 60%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보다 생산성이 훨씬 높다.
독일 중소기업이 생산성과 경쟁력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인가. 전통적으로 독일의 중소기업인 수공업은 길드가 발급하는 마이스터 자격증이 있어야 창업을 할 수 있었다. 20세기 초 길드의 후신으로 조직된 수공업협회와 상공회의소는 1935년 나치 하에서 마이스터 자격증을 가진 자만 수공업을 창업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도 사람과 생명과 관련된 업종에서는 이 관행이 유지되고 있다. 독일에서 마이스터가 되기 위해서는 아우스빌둥을 통해 직업자격을 획득하고 해당 분야에서 다년간 근무경력을 쌓고 기술실기, 기술이론, 경제학, 법학, 교육학에 걸쳐 마이스터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마이스터의 창업은 탄탄한 기술력과 전문성으로 창업의 성공률이 매우 높다. 성공률이 98%에 이른다고 한다.
낮은 중소기업 생산성, 마이스터·아우스빌둥으로 극복
독일에서 중소기업 중 가족기업은 93%에 달한다. 아우스빌둥제도와 마이스터제도로 대를 이어 가업을 전수하기 때문이다. 마이스터인 아버지가 도제인 아들을 가르치고 수세대에 이은 탁월한 전문성으로 세계에 독보적인 히든챔피언 강소기업이 돼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 이런 중소기업은 독일을 세계 2~3위의 수출대국으로 이끌면서 독일에서 일자리창출을 주도한다. 우리 중소기업의 낮은 생산성을 극복하기 위해 독일의 마이스터기업과 아우스빌둥 같은 이중의 처방전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