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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관계 정부역할│독일의 임금과 사회안전망] 노동자 임금 집착은 '빈곤' 고통보다 '불안' 때문 (정미경 소장)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4-01-15 22:40:21 조회수 791

[노사관계 정부역할│독일의 임금과 사회안전망] 노동자 임금 집착은 '빈곤' 고통보다 '불안' 때문

제대로 된 사회보장 없이 노조 임금인상만 탓할 수 없어 … 공황·절망 상태 피할 사회안전망 필요

2023-06-23 11:02:46 게재

 

정미경 독일정치경제연구소 소장. 독일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다.

 

'논어'의 계씨(季氏)편에 '불환과이환불균(不患寡而患不均), 불환빈이환불안(不患貧而患不安)'란 구절이 있다. '나라의 부가 적은 것보다 분배의 형평성을 걱정하고, 가난보다 불안을 걱정하라'는 뜻이다. 분배의 불공정과 삶의 불안은 빈곤을 능가하는 사회불안 요소라는 교훈이다.
여러 불안 중, 노동자의 하루 세끼를 지켜줘야 할 직장생활의 불안은 치명적이다. 월급을 꾸준히 받아야 삼시 세끼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 남들과 같이 아이들 학원이라도 보내자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거기에 회사에서 그나마 월급 받을 때 저축하지 않으면 노후가 불안하다. 노인 빈곤, 남의 얘기가 아니다. 이 모든 걸 직장이 보장해줘야 하는데 아파서 일을 못하게 되면 큰일이다. 출근해서 건강하게 또는 살아서 돌아오는 것도 보장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최근 노동운동 비판이 정치 위기를 구하는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고 있다. '소수만이 기득권을 누린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닌 특권이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타파하겠다'고 노동조합을 겨냥한다. 최저임금이든 대기업임금이든 임금인상투쟁은 지나친 것으로 인식된 지 오래다.
대기업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에 집착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도하다 여겨지는 임금인상을 둘러싼 노사의 대립을 노사정 사회적 합의로 바꾸어내기 힘든 현실은 무엇때문일까.

현대차 노사, 2023년 임단협 상견례│우리나라 대표적인 노사의 임금·단체협약 교섭장면. 현대자동차 노사가 13일 울산공장 본관 동행룸에서 교섭대표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임단협 상견례를 열고 있다. 사진 현대차 제공


월급이 오르면 누군가는 생활의 여유를 즐기고자 잔업과 특근을 줄이고 가족과 시간을 내어 외식도 하고 자주 만나지 않던 친구와 만나 시간을 보내고 취미생활하기도 할 듯싶다. 이걸 경제학에서는 '소득효과'라고 한다. 반면 월급이 오르면 한시간 더 일하게 될 때 버는 돈이 커지고 그 시간에 일하는 대신 여가를 즐기게 되면 잃어버리는 기회비용이 커져 여가를 줄이고 일에 더 몰입하는 경우도 있다. 이걸 임금이 높아져서 노동시간을 늘리는 '대체효과'라고 한다.

◆한국, 임금이 높아도 일과 돈에 집착 커져 =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은 대기업 사례를 볼 때 우리나라는 대체효과가 더 크다. 기본급이 낮으니 잔업으로 임금인상의 효과를 극대화해 생활 불안을 해소하고자 한다.

일부 노조위원장은 심지어 '잔업을 따오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출마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은 일과 월급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현상을 장시간 노동체제로 일컫기도 했다. 생활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일을 해 돈을 벌 수 있을 때 더 벌려고 발버둥을 친다.

파업이 적고 노조가 합리적이고 노사정 사이에 대화와 타협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는 독일의 사회안전망은 어떠한가? 먼저 실업의 불안은 어떻게 해소될까? 실업수당은 실업자가 생계불안으로 패닉(공황상태)에 빠지지 않으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찾아나가는 걸 돕는 사회보장제도다.

12개월 이상 실업보험료를 납부해 수급권이 있는 경우 독일 실업자는 월급의 약 60~67%를 받는다. 평균적으로 지급되는 수당은 2022년에 남성의 경우 월 1266유로, 여성의 경우 952유로였다. 이를 환산하면 남자는 약 월 184만원, 여자는 138만원 정도다. 그리고 근속연수에 따라 6개월에서 24개월까지 차등 지급된다.

실업수당은 국가가 지급하는 공돈이 아니다. 연대의 원칙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사회보험을 조직하고 상부상조의 원칙을 지켜 운영하고 실업이라는 어려움에 대비한 것이다. 실업수당은 실업자가 당장 생활수준을 현격히 낮추지 않으면서 안정적으로 구직활동에 집중해 지속가능한 합리적인 일자리를 찾아 생산적으로 직장생활을 지속하도록 지원한다.


◆독일, 실업 공포에 안빠지고 일자리 찾게 = 장기실업에 처한 빈곤층의 구직자는 어떠한 사회적 지원을 받을까? 독일은 2023년 실업부조와 구직자 사회부조를 통합해 시민부조를 지급한다. 시민부조의 대상자는 일할 수 있으나 생활비를 자신의 수입으로 충당할 수 없는 사람과 실업수당 주거수당 아동수당 등 우선적 수당이 있으나 이것으로 생활비를 다 충당할 수 없는 경우 지급된다.

본인의 자산상태나 가족의 수입 등이 고려된다. 시민부조는 홀로 지내는 사람의 경우 502유로(74만원)를 지급하고 필요에 따라 추가적인 지원이 있다. 기본적으로 임대료와 난방비가 추가적으로 지급된다. 부조를 받는 동안 의료보험료 요양보험료 그리고 연금보험료는 고용청이 부담한다.

이런 실업수당에는 조건이 따른다. 실업자가 일자리 알선을 받는 경우 고용청은 알선이 합리적인지 아닌지 따진다. 실업수당을 받는 처음 3개월 동안은 알선된 일자리의 임금이 실업수당 기준이 된 임금에 20% 정도 낮은 수준이면 알선은 합리적인 것으로 추정한다. 다음 3개월 동안은 30% 낮은 임금의 일자리가 알선되면 합리적으로 여겨진다. 이후 실업부조의 대상자가 되기 직전이나 실업부조의 대상자가 되면 알선된 일자리의 임금이 실업부조금에 도달하면 일자리 알선이 합리적인 것으로 여긴다. 실업자는 이런 합리적인 알선을 수용해야 하며 이를 거절할 시에는 실업수당이 깎인다.

노년의 생활불안은 어떻게 해소될까? 독일은 공적연금제도를 가장 먼저 도입한 나라로 최초의 공적연금은 1889년 도입된 노동자연금제도이었다. 2021년 7월 현재 2120만명이 연금을 받았다. 그중 사적연금이 아닌 법정연금의 수령자는 2023만명이다. 법정연금 수급자 중 노령연금의 수령자는 1851만명이다. 나머지는 사고로 노동능력을 상실한 자에게 지급되는 연금과 광부연금에 해당된다.

◆노령연금 독일 평균 155만원, 한국 61만원 = 전체 연금 평균수령액은 월 1038유로(153만원)이며 노령연금 평균수령액은 월 1048유로(155만원)에 달한다. 한국의 경우 2023년 1월 기준 61만원 수준이다.

누가 노령연금을 받지 못하는가? 당연히 한번도 일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주부들 중 드물지 않게 한번도 직장생활을 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 독일에서는 직장에서 일한 적이 없어 연금이 없는 사람에게도 기본적 생활안정을 보장한다.

정상적인 노령연금을 받지 못하고 본인의 소득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는 궁핍한 사람은 기초보장을 받을 수 있다. 독신인 성인은 최소 449유로(64만원)이 지급된다. 부부는 함께 809유로(115만원)를 보장받는다. 기초보장의 수준은 소득과 자산에 따라 다르며 배우자의 자산도 고려된다.

물론 기초보장 수령자도 일을 할 수 있다. 일부 직업은 특히 연금 수급자에게 적합한 직업도 있다.

노령기 기초보장을 받는 인구 수는 전체 인구의 3.4%, 그 가운데 17.9%는 정규 연금을 포함해 수입이 전혀 없고, 36.6%는 400유로 미만, 40%가 400~800유로, 3.7%가 800유로를 조금 넘는 수준의 수입이 있다.

◆질병·산재가 생활이 위협이 되지 않도록 = 독일의 의료보험은 1883년대에 시행된 질병보험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전체국민의 90%인 약 7100만명이 의료보험에 가입돼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독일의 의료보험제도는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재원과 의료자원을 갖추고 있다. 독일 의료보험은 월소득 3900 유로 이하의 소득자는 공적의료보험을 강제한다. 저소득자는 이러한 강제를 통해 형평성 있는 의료서비스를 포괄적으로 제공받는다.

의료보험에는 예방치료, 입원 및 외래환자 병원치료, 의사치료, 정신건강 치료, 재활치료, 의료비보조, 처방조제, 치과치료 등 치료비 전액뿐 아니라 출산수당 병가수당 질병수당 부상수당 또는 회복기수당 등 금전적인 보상이 있다.

1884년 독일은 세계 최초로 재해보험(산재보험)을 도입했다. 도입 당시 재해로 한정된 서비스는 1925년 업무상 질병까지 보상 범위를 확대했다. 1942년에는 전체 임금노동자로 넓혔고 1971년부터는 유치원생이나 대학생을 포함한 전체 학생에게도 보험을 적용한다. 치료, 수당지급, 산재 및 직업병 예방도 산재보험의 서비스 영역이다.

산업재해로 일을 할 수 없는 경우 사회법전 7권에 의해 상해수당이 지급된다. 법전은 부상·질병·사망 시 유가족에게도 생활안정을 보장한다.

◆'불안' 고통, 대기업 노동자도 예외일 수 없다 = 우리의 경우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대기업 노동자도 돈벌이에 바쁘다. 사회적 위험에 대비해 최저소득을 보장하는 제도인 사회보장제도가 생활안정을 제공하지 못하니 어쨌든 월급을 잘 받을 때 최대한 안정된 생활의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이들도 행여나 다가올 갑작스러운 불행에 노심초사하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노동자가 개인적으로 노력해서 이런 불안을 해소하자면 그야말로 큰돈이 필요하다.

어떤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거나 일자리를 유지할 확률이 각 50%이고, 실질당할 때 생활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 돈이 1000만원이라면 최소 500만원 또는 1000만원까지 현금을 쥐고 있어야 안심이 된다. 가입자에게 최저생계수준 이상 생활을 유지하도록 급여를 제공하는 사회보험을 제대로 조직하면 어떻게 될까? 개인에게 닥칠 실업이라는 불행은 예측하기가 어렵지만 사회적 실업의 발생률은 좀 더 예측이 가능해진다. 예측가능한 불행의 확률을 십시일반의 원칙으로 대응할 수 있으면 돈에 대한 집착이 줄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길 것이다.

공자의 지혜를 빌어 '빈곤'의 고통을 앞지르는 '불안'의 고통에 대해 사회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사회보장제도 없이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를 탓할 수 없다. 개인이 사회적 불안을 혼자 떠 안아야 하는 사회는 고독하다. 임금인상 투쟁이 격렬할 수밖에 없다.

["노사관계 정부역할" 연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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