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고 글>
2026-02-06 13:00
쿠팡 혁신의 이면, 과로·산재가 만든 경쟁력 … ‘속도’가 경쟁력인 환경 개선없인 ‘비극 반복’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계기로 노동자의 과로사와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다시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물류·배송 노동현장의 과로사와 산업재해를 출발점으로 삼아 미국 아마존과 독일 아마존, 그리고 한국 쿠팡의 노동·경쟁 전략을 비교·분석한다.
필자는 동일한 글로벌 기업과 유사한 산업구조라는 공통조건에서도 국가별 노동법과 제도 선택에 따라 기업의 경쟁 전략과 노동자의 생존 조건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본다. 특히 배송 속도와 효율을 핵심 경쟁력으로 삼아 성장해온 플랫폼 기업의 이면에서 과로와 산재가 어떻게 구조화되는지를 짚고 이를 법과 제도로 제어해 온 독일의 사례가 한국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을 조명한다.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계기로 물류센터와 배송 현장에서 발생하는 노동자의 과로사와 산업재해, 사망사고 문제가 사회적 주목을 받고 있다. 2020년 10월 대구 칠곡물류센터에서 장덕준씨가 과로로 숨진 사건은 쿠팡의 노동현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당시 김범석 쿠팡 아이엔씨(Inc) 의장이 “그가 열심히 일했다는 기록이 남지 않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린 정황과 이후 이어진 과로사 사례들은 노동자의 희생이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기업의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독일 그리고 한국의 사례를 비교해보자.
◆미국 아마존, ‘더 빠르게’와 알고리즘 통제 경영 = 미국 아마존은 1994년 설립 이후 온라인 유통을 넘어 물류와 콘텐츠까지 확장하며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성장했다. 아마존의 전략은 빠른 속도와 방대한 규모, 데이터 분석으로 고객 만족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프라임 멤버십은 무료 배송과 당일·익일 배송을 제공하며, 이를 위해 물류센터부터 최종 배송까지 직접 통제하는 거대한 물류망을 구축했다.
‘더 빠르게’라는 지침은 물류 시스템 전반을 관통하는 절대 명령이 됐고 속도 경쟁은 규모의 경제와 결합해 가격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아마존은 단기 이익보다 장기적 시장 지배를 우선하는 플랫폼 전략을 구사한다. 전통적 기업이 상품과 서비스를 경쟁력으로 삼는다면, 플랫폼 전략은 온라인 시장을 구축해 사고파는 사람들을 모아 거래와 상호작용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 참가자가 많아질수록 플랫폼의 가치가 커지고 경쟁사가 쉽게 따라올 수 없는 독점적 지위가 형성돼 중소 유통업체와 오프라인 소매업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또 다른 경쟁 전략은 데이터와 알고리즘 기반의 통제 경영이다. 아마존 물류센터에서는 노동자의 이동 동선, 피킹 속도, 작업량, 휴식시간까지 실시간으로 수집·분석된다. 작업 실적은 점수화되고 기준 미달 시 자동 경고나 해고로 이어진다. 관리자의 재량은 거의 없으며 규칙을 만드는 주체는 시스템이다. 극단적 효율은 가능해졌지만 노동강도는 구조적으로 높아졌다. 배송 업무는 직접 고용을 최소화하고 소규모 하청업체를 통해 기사들을 운영한다. 이들은 형식상 아마존 직원이 아니므로 사고·산재·과로 문제의 책임은 하청업체에 귀속된다.
미국 노동총연맹–산별노조회의(AFL-CIO)는 물류·배송 업종이 다른 산업 평균보다 사고 위험, 특히 사망사고율이 높은 분야라고 지적한다. 산재사망률은 1만명당 약 1.29~1.45명에 달한다. 아마존은 기업 차원의 사망사고 통계를 공개하지 않지만 물류센터의 부상률과 중대재해 발생률이 업종 평균보다 높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독일 아마존, 노동시간법과 평의회가 바꾼 전략 = 아마존은 1998년 독일 레겐스부르크에 온라인 쇼핑몰을 설립하며 유럽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물류망을 확대하며 독일 전자상거래 시장의 강자로 자리 잡았지만, 독일에서의 경쟁 전략은 미국과 달리 강력한 노동시간법과 사업장평의회 제도에 막혀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독일 노동시간법은 하루 8시간 근무를 원칙으로 하고 예외적으로도 하루 최대 10시간을 넘길 수 없으며 평균은 8시간을 초과하지 못한다. 주 6일 근무를 하더라도 주당 노동시간은 사실상 48시간이 상한이고, 연속 근무 후 최소 11시간의 휴식도 반드시 보장된다. 이 법적 장치는 기업이 생산성과 속도를 이유로 노동강도를 무한정 끌어올리는 것을 차단한다.
이에 따라 독일 아마존은 초과노동을 통한 속도 전략을 선택할 수 없었다. 주문이 폭증해도 야간·연장근로를 상시화하거나 휴식시간을 줄이는 방식은 불가능했다. 대신 물량을 분산하고 인력을 추가 투입하며 물류센터 간 재배치와 배송 일정 조정으로 대응했다. 노동자의 속도를 더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과 계획을 조정하는 방식이었다.

사업장평의회의 존재도 중요한 제약이다. 근무시간 배치, 교대제 변경, 연장근로 도입은 모두 공동결정 사항으로, 아마존은 일방적으로 근무시간을 늘리거나 작업 강도를 높일 수 없었다. 반드시 종업원평의회 동의를 거쳐야 했다. 그 결과 독일 아마존의 전략은 노동법과 노사 합의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고정됐다.
독일에서는 당일배송이나 초고속 배송이 제한적으로 운영된다. ‘무조건 빠르게’가 아니라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으로’ 배송하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 됐다. 소비자 역시 배송 속도가 다소 늦더라도 그것이 노동법과 안전을 전제로 한 결과라는 점을 받아들인다. 노동자의 과로와 위험을 통해 얻은 속도는 경쟁력이 아니라 불법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현재 아마존은 독일법에 맞춘 경영 전략으로 시장을 장악했다. 온라인 유통 매출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물류센터 확장 △프라임 서비스 도입 △식료품과 콘텐츠 분야 진출을 통해 매출을 높이며 시장 지배력을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 독일은 미국에 이어 아마존의 전세계 두번째 핵심 시장이 됐다.
◆한국 쿠팡, 속도는 혁신인가 희생의 결과인가 = 쿠팡은 미국 아마존처럼 배송 속도를 경쟁력의 핵심으로 삼았다. ‘로켓배송’을 통해 익일·당일 배송을 표준화하고, 이를 위해 상품 선매입, 전국 단위 대형 물류센터 구축, 배송 인력 직접 고용이라는 고비용 구조를 선택했다. 그러나 고비용을 만회하기 위해 인건비와 작업 속도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했고, 물량이 늘어날수록 설비 투자나 인력 확충보다 기존 인력의 노동강도를 높이는 선택을 이어갔다.
겉으로는 정보통신(IT)와 물류 혁신의 성과처럼 보이지만 쿠팡의 경쟁력은 사실상 과로사·산재·사망사고 위에 세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로켓배송은 자동화만으로 구현되지 않는다. 분류·피킹·상차·배송 과정은 결국 노동자의 속도와 체력에 의존한다.
쿠팡이 이러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의 기업 환경이 장시간 노동, 개인 희생, 하청구조를 통한 책임 분산을 오랫동안 경쟁력의 일부로 허용해왔다는 구조적 문제가 자리한다. 법적 규제가 존재하지만 책임 회피가 가능하거나 법 위반이 비용 절감 수단으로 악용돼왔다.
만약 독일처럼 노동시간법과 사업장평의회 제도가 엄격히 적용됐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아마존이 독일에서 미국식 속도 경쟁을 포기했던 것처럼 쿠팡도 다른 전략을 찾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과로사·산재·사망사고를 전제로 한 ‘속도’가 더 이상 경쟁력이 아니라 위법이 되는 환경을 만들지 않는 한, 한국 물류산업의 비극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2026-02-06 13:00
산재사망률 격차, 독일의 4배 이상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쿠팡에서 과로사로 사회적 논란이 제기된 사례는 서른 건에 가깝다. 2024년 국정감사에서 확인된 산업재해 건수도 8643건에 이른다. 반면 독일 아마존에서는 언론 보도로 확인된 과로사 논란 사례가 1건에 그친다. 독일 물류회사 DHL에서는 과로사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보고된 바 없다. 동일한 물류·배송 노동에서 발생한 노동자의 사망이 한쪽에서는 반복적으로 사회적 논란으로 축적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거의 가시화되지 않는 현실은 적잖이 놀랍다.
과로사는 우연이 아니다 … 노동시간과 사망률의 상관관계
과로사 통계는 노동시간과 산업재해 사망률의 비교를 통해 가늠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연간 실노동시간은 1874시간으로 OECD 평균(1751시간)을 크게 웃돈다. 반면 독일은 약 1342시간으로 OECD 국가 가운데 최저 수준에 가깝다. 양국의 격차는 연간 502시간 이상으로 독일 노동자가 1년 4개월에 걸쳐 수행하는 일을 한국 노동자는 1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에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노동시간 격차는 산재 사망률에도 반영된다. 한국의 2023년 전체 산업재해 사망률은 노동자 1만명당 약 0.39명으로 OECD 평균(0.24명)의 약 1.6배다. 반면 유럽통계청에 따르면 독일의 산재 사망률은 노동자 1만명당 0.1명 미만이다. 같은 산업사회, 유사한 기술 수준에도 사망률에서 4배 이상 격차가 발생한다는 점은 두 나라의 경제 성과가 어떤 조건 위에서 축적돼 왔는지를 되묻게 한다.
노동시간과 사망률의 상관관계는 물류·택배 산업에서 더욱 뚜렷하다. 운전과 하역, 반복적 육체노동, 야간·새벽 근무가 결합된 물류·배송 노동은 대표적인 고위험 노동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2024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물류센터 야간근무자의 일일 노동시간이 9시간을 넘는 사례가 적지 않고, 택배기사는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가 반복되는 경우도 흔하다.
이는 수면 부족과 만성 피로를 누적시키고 심혈관계 질환 위험을 높인다는 점이 지속적으로 지적돼 왔다. 공식적인 국가 간 택배 노동자 사망률 비교 통계는 제한적이지만, 운송·배송 직군에서 사고사뿐 아니라 질병형 사망 비중도 높다는 간접 지표만으로도 과로와 사망의 연관성을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
독일의 낮은 과로사와 산재 사망률은 노동시간법과 사업장평의회법 등 법제가 과로와 위험을 억제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반면 한국은 법정 노동시간 규제가 있음에도 연장·휴일·특별연장근로가 광범위하게 허용되고 물류·배송 산업에서는 노동시간 관리가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독일 아마존 “세계 최고 고용주가 되겠다” … 선의 아닌 제도의 문제
알렉 맥길리스의 ‘아마존 디스토피아’는 미국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입고·분류·피킹·상차·배송의 전체 풀필먼트 시스템이 어떻게 위험하고 반복적인 노동을 구조화하고 저임금과 높은 부상·이직률을 낳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지속적으로 비판을 받아온 아마존의 유럽 고객 풀필먼트 부문 부사장 스테파노 페레고는 2021년 독일 물류센터 확장 과정에서 “세계 최고의 고용주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야심찬 계획을 밝혔다. 같은 기업이 국가에 따라 전혀 다른 언어와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문제는 기업의 선의가 아니라, 정부가 어떤 노동 기준을 허용하고 강제하느냐에 있다.

정미경
독일정치경제연구소장